2009년 5월 23일을 아마 평생 잊을 수 없을 것같다.
아니 잊어선 안되는 날이다.
내 기억속의 노무현은
내가 중학생일때 시험기간 주말이 되면
독서실에서 밤새우며
동네 양아치형들과 독서실 화장실창문으로 건물밖으로 도망나와
(밤 12시가 넘으면 주인아저씨가 건물입구 문을 잠궜다.)
독서실 옆에 있는 시장을 돌아다니며
이것 저것 몰래 훔쳐 먹던 기억과 함께 자리하고 있다.
시장에 가면 들리던 소리
전두환에게 명패를 집어 던지고 큰소리로 호통을 치던
치기 어린 젊은 국회의원
청문회 스타 노무현
그렇게 한 사람은 청문회라는 곳에서
前정권의 대통령을 향해 바른 소리를 할 때
난 불 꺼진 시장속 에서 과일과 우유를 훔쳐 먹고 있었다.
그런 기억을 뒤로 2002년 대선 쯤에 들어서
내 기억속의 노무현이 다시 돌아왔다.
몰랐다. 청문회이후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그 사람이 무엇을 했고 무엇을 이루고싶어했으며
무엇을 이뤘는지...
단지, 들리는 말에 따라면
김 대중과 함께 빨갱이라는 것
하지만, 그 시기의 김대중은 나에게 더 이상 빨갱이가 아니였다.
우리나라 민주주의 상징이자 어른이였다.
그렇다면 그와 같이 빨갱이라고 불리우는 노무현은?
2002년 12월 난 노무현을 찍었다.
상식이 통하는 그런 사회를 기대했다.
막연했다. 나에게 노무현은
참 많은 욕을 먹었다.
진보와 보수 양쪽에서
좌측 깜박이를 켜고 우측으로 간 사람부터 빨갱이
수구세력들의 힘은 컸다.
그리고 진보세력들의 독선도 집요했다.
내가 아는 노무현은 그 어느누구에게도 환대를 받지 못했다.
왜 노무현은 그렇게 욕을 먹어야 되는지 궁금했다.
선거공약으로서 지키지 못한것도 있다.
예를 들면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같은거...
비판을 받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사의 흐름이 무작정 꺼꾸로 돌아가기만 한 것도 아닌데 왜 그는 그렇게 욕을 먹어야하는가.
그때부터 난 노무현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난 노사모도 아니고 노빠도 아니다.
하지만 그가 잡은 역사의 흐름이 틀리지않았다고 확신한다.
노무현을 기억함에 있어
너무도 서운하고 답답하고 원망스러웠던건
열린우리당의 실험이 정동영같은 기회주의자의 손에서 끝나버렸다는거
이인제.김영삼같은 기회주의자들이 더 이상 승리하지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건만 내품안에서 자라난 기회주의의 싹을 자르지 못했던거
그리고 소위 진보로 불리우던 사람들의 성급함
참여정부 5년동안의 진보의 느낌은 마치 전쟁에서 승리한 사람들이
전리품을 하나라도 더 가지고 가기 위한 이전투구 같은 인상이였다.
그들이 노무현에게 원한건 민주주의의 탈은 쓴 독재를 원했던거 같다.
모든 것이 성급했다.
IMF가 끝났다. 다시 한번 민주정권이 들어섰다.
자. 싹 다 갈아엎어보자
아니 대통령 혼자의 힘으로는 안되는 시스템이 되어버렸네
왜 안되는거지... 노무현대통령 당신이 책임을 지고 다 싹 엎으시오
우리는 민주주의 지켜냈고 정통성을 가진 민주정권을 탄생시켰으니
당신은 敵을 처단 하시오 라고 밀어 붙이는 듯한 인상이였다.
그렇게 5년의 시간이 지나고
난 그래도 믿었다. 나만이 아닐꺼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딴나라가 정권을 잡아도 괜찮다라고 말한 유시민과 노무현도 같은 생각이였으리라 믿는다.
지난 10년간 대한민국은 이전과는 다르게 시스템적으로 안정화를 찾아갔다.
모든 것이 시스템안에서 움직임을 시작했다.
한번 움직이기 시작한 시스템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으리라는 믿음
적어도 그 시스템안에서 움직일꺼라는 믿음
모든게 틀렸다.
부엉바위에서 바라 본 봉하마을
많은 산에 가려져 그 속에 있는 조그만 그 마을
내가 알던 시골의 풍경과 어느 하나 다를 것도 없는 그 모습
그 새벽에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신이 살아온 가치가 한 순간에 부정당하는 느낌은 ...
부엉바위는 조용했다.
담배를 한대 피웠다.
봉화사를내려와 다시
노무현 대통령의 비석앞으로
내가 올 때보다는 제법 사람들이 많아졌다.
주차장은 꽉 차 있었다.
관광버스도 2,3대 보인다.
낮시간이여서 그런지 마을 사람들은 일하러 나간거 같아 보였다.
일상이다.
별로 대단할 것도 없고 대단하지도 않은 그 봉하마을에
사람들의 발걸음이 옮겨진다.
그랬으면 좋겠다.
일상처럼 그렇게 인간 노무현이 사람들에게 스며들어 갔으면
그 곳에 더 이상 사람들이 오지않아도
맘 속에서 살아갔으면
서울로 올라오니 저녁 7시반이였다.
짧은 휴가 서둘러 다음 약속장소로 발걸음을 옮긴다.



































임경원감독님 인터뷰기사완성본(97).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