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2일 수요일

일본의 정권교체

솔직히 남의 나라 일이고
특히 일본의 일이라 별로 관심은 없지만

이번 정권교체는
싸워서 얻은 민주주의가 아닌
전쟁에 패함으로 인해
미국으로부터 부여받은 민주주의가
54년만에 절차적민주주의를 완성했다는데
그 의의가 크다고 하겠다.

오늘 뉴스를 보니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참 많다.
자민당에 대한 불신과 무능,부정부패에 대한
주권자의 심판이라는 이야기가 대다수를 이루었다.
고이즈미에 의한 작은정부 신자유주의노선의 부정적인 부분이
표현화 되어 나타난 양극화문제와
개발논리의 피곤함에 지친 국민의 선택등등...

전문가들이 하는 말들이니
많은 분석들을 했으리나 생각된다.

하지만 과반수를 훌쩍넘는 308석의 민주당을 선택함과 달리
NHK가 실시한 출구조사에 따르면 자민당을 지지하는 유권자가 35%로 집계됐다는것이다.
이는 31%의 정당지지율을 기록한 민주당을 앞서는 수치다.
재미있지 않은가?
 
50년 이상 지속되어온 독식체제
버블붕괴이후 살아나지 못하고 있는 일본경제
정권의 부정부패에 대한 피로감등이
마치 2007년 대한민국의 선거를 보는듯했다.
(물론, 2007년 국민들이 정권교체를 염원했던건 부정확한 찌라시의 남발,선거이슈의선점,죽지않은 경제죽이기등... 수구세력들 매스컴에 의한 조작에 의한 중우정치의 결정판이라고 봐도 무방하겠지만)

일본국민
일단 바꾸어보자라는 의식이 혹 강했던건 아닐까?
일본유권자들 어떤 심정으로 투표했나? (JPNews기사 참고)
를 보면 알수 있을 것이다.
왜?민주당이라는 이유는 별로 없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308석을 가지고 갈수있었던 것은
자민당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더 컸기 때문이다.
 고이즈미의 신자유주의프레임에 의해 실행된 우정국민영화가 일본 경제에 가져다 준 이익이 극히 미미했고(그 과정에서 간이보험자를 위한 숙박시설에 대한 매각비리가 드러나고) 오히려 그간의 정책으로 인해 도심과 농촌의 양극화는 진행됐다.
그리고 고이즈미 이후 아베, 후쿠다 전 총리 등 2세정치인들은 1년씩 연이어 권력을 내던지면서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했고, 집권당 내에 통합기능이 상실되었다는 것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아소의 실언과 결단력의 부족등 무책임한 정당의 모습을 보여준 자민당의 자멸이였다는게 맞을것같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가 생긴다.
죽은 사회로 불리우는 일본의 활력을 잃어버린 사회가
이번 정권교체로 참여민주주의로의 시발점이 될지
일시적변화의 갈증이 컸던 한 시대의 현상으로만 남아버릴지

변화에 대한 역사적 방향성이다.

민주당의 마니페스토중에 많이 이들이 선호했엇던 것은
어린이수당이다. 중학교 졸업시까지 아이 1명당 매달 2만 6천엔(한화 35만원 상당)씩 일률적으로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그 재정마련에 대해서는 MB가 대선공약으로 내세웠던 이유와 비슷하게 쓸모없는 곳의 예산을 돌려 충당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현재 대한민국에서 복지예산의 감소로 이어졌다. 감소한 사회복지를 대신한 것이 22조의 대규모 예산을 쓰는 삽질공사가 될줄은 누가 알았겠나.그리고 참여정부의 모든것을 역행해가며 진행했던 정부기관의 개혁(?)이라는 것이 8/31일부로 참여정부 시절의 청와대와 과연 무엇이 달라졌나 ? 오히려 더 은밀해졌을뿐이다. 강만수는 부활해 좀 더 측근이 되어서 돌아왔다.)

위에 인터뷰기사를 보면 (위부분링크참조) 일본인이 원한 것은 정책철학보다는 자본적 풍요로움이 더 크다.

자민당이 지배하던 54년의 기간후 민주당의 새로운 정권창출
우리도 비슷한 경험을 하지 않았던가
기나긴 독재와 군부정권이후 그들과 야합했던 김영삼정권 그리고 IMF
그를 극보하기 위한 국민들의 선택에 의한 김대중정권의 탄생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를 우리도 이루었다.

그 시절 98년 난 대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군대를 제대하고 똑똑한 후배들에게 뒤쳐지지 않기 위해 도서관도 다녔다. 우리학교의 경우 도서관앞에서 꽤 많은 집회를 가지곤 했었는데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김대중 정권타도 였다. 정리해고의 칼바람에 곧 사회로 나가야 되는 대학생들이 가장 걱정을 했던 부분은 고용의 창출과 안정적 생활이였지만 IMF의 칼바람과 신자유주의의 확대로 인해 그들의 바람은 뜻대로 나아가지 못했다. 98년도였다. 정권이 바뀐지 채 6개월도 되지 않은 시점이였다.
즉, 정권교체에 대한 기대치라는 것이다. 그 시절 조중동에서 많이 하던 말은 준비되지않는 정권이라는 것, 부정적인 시각의 확대, 그것이 김대중정권을 관통해 노무현정권까지 지난 10년을 관통하는 진보,보수를 옮아맨 가치관이였다.

변화를 원했던 사람에게는 변화의 더딤이 조롱의 대상이였고
변화를 원하지 않았던 사람에게는 존재 그자체가 증오의 대상이였다.

정권교체를 이룬 지금의 일본, 앞으로의 일본도 새 정권에 대한 기대치에 대한 반발도는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즉, 먹고 사는 문제의 해결을 원하고 있지만 어떻게 먹고 사는 것이 인간다움인지 대한 고민하지 않는다.

4년째 일본에 살고 있으면서 느낀 것이 있다면
일본인들은
무엇을? 왜? 라는 질문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수를 위해서는 소수의 희생은 당연히 감수해야 되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라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다수의 결정에 순응하는 개인의 목소리를 배제 하는 방식에 익숙해져있는 것이다.

이것이 일본 특유의 迷惑かけるな(남에게 피해 끼치지마)라는 정신과 함께
-이부분에 대해선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것이 좋은것 아니냐는 말도 나올 수 있지만 여기서는 피해를 끼치지않기 위해서 타인과의 관계를 줄이고 점점 더 개인화되어가는 인식의 작용을 말하기로 한다.
建て前(입발린 말)로 대표되는 일본인들의 특유의 성향까지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번의 정권교체는 하나의 일회성 이벤트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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