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13일 화요일

시스템과 개인 그리고 소통과 똘레랑스

어제 일이다.
김제동의 퇴출에 대해 어떤 글들이 있을까 궁금해서 이런저런 블로그를 다녀봤는데
그중 한 블로그가 눈에 띄었다.
1일 방문자수가 8000명에 달하는 인기 블로그 였다.

그 분의 블로그 원문 링크

김제동 퇴출은 정치적인 모습도 있지만 김제동의 부진도 무시 못한다.


저도 꽤 많은 부분을 동감하지만 심현섭에 대한 이야기때문에 리플을 달았다.
심현섭은 2002년 대선 이회창 선거캠프에서 활동했다.
그리고 방송에서 이회창씨 선거를 지원했다는 이유로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출현하지 못했다.
(당시 윤도현이 자신이 출연하면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윤도현은 그런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하고
시간이 지나 밝혀진 것은 심현섭측에서의 오해였고 그에 대해 심현섭이 사과를 했다고 한다.
아마 심현섭이 그 뒤 방송에서 보이지 않게 된것은
스스로 정치적피해자로 이야기한 것이 시청자들에게 반감을 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심현섭은 참여정부시절의 연예인 정치탄압이라는 아이콘만으로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되고 만다.

그래선 난 , 그 '심현섭'이라는 이름이 글 말미에 나오는 것에 대해 심한 불쾌감이 있었다.
설사, 정치적탄압에 의해 방송에 출연하지 못하게 되었다면 그것은 옳지않다는 것이고
그 누구도 보수든 진보든 자신의 정치적견해를 밝힘에 있어 탄압받지 않아야 된다고 썼다.

답글이 달렸다.
옳다가 아니라 다르다로 써야됐고 그는 내가 '아집'이라는 표현을 써 나를 단정시키고 정의지었다.

다시 댓글을 달았다.
내가 옳다라고 말한건 내 생각이고 강요할 생각은 없다.
만약 심현섭이 부당했다면 지금의 것도 부당한것이고 이것을 시스템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자고

답글이 달렸다.
그는 신동엽도 요즘에 빌빌거리는데 그도 진보연예인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정치적압력에 의한 퇴출이라는 팩트가 밝혀진것이 없으므로 카더라통신만으로 지지하면 김제동에게 색깔 씌우기 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김제동도 원치않는 정치적은 공방은 그만하는게 좋지 않냐라고 했습니다.

저는 정치하는 연예인이라는 낙인이 왜 안되는지 물었습니다.
거기에 대한 포용의 자세를 가지자고 했습니다.

답글이 달렸습니다.
제가 글을 대충읽고 쓴다고 약간의 비아냥을 쓰셨더군요
김제동의 정치적 발언은 지지하지만 그를 정치인으로 몰아가는 모습은 반대합니다.이번 일을 정치적으로 만들어 버리면 피해자는 누구일까요?
김제동 바로 자신입니다. 자신이 정치적인 발언을 한것과 남들이 정치인이라고 보는 연예인은 다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아 본인은 진보주의자라고 저에게 말했죠

저는 다시 댓글을 달았습니다.
님과 저의 차이는 보는 관점에 대한 차이이고
새 정권에서의 일련의 흐름을 봤을때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고 그래서 다시 한번 심현섭의 예를 든것이 님의 글에 도움이 되지않고 오역의 결과를 가져올수있다고

답글이 달렸습니다.
소통과는 멀다고 하네요
^^;;

전 이런 일련의 과정이 소통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는데
멀다고 하니 조금 어안이 벙벙하더군요.

그럼 제목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시스템과 개인
이번 김제동의 퇴출에 대해 저는 일련의 과정에서의 개연성에 관심을 두고 정권의 의지에 따라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려고 하는 권력시스템의 견고한 명박산성을 보았습니다.
많은 네티즌들이 분노했던 것도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분의 글은 개인의 부진에 포커스가 맞춰져있죠.

한 사람의 문제에는 시스템과 개인이 섞여있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이 경우 어느쪽에서 문제의 해결점을 찾느냐는 그래서 굉장히 힘든 부분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시스템이 아무리 좋아도 개인의 노력이 없으면 발전할수 없고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시스템이 그것을 받쳐주지 않으면 발전할 수 없습니다.
혹, 시스템이 받쳐준다고 해도 그 성공은 대가는 개인에 머뭅니다.

저는 문제의 해결점은 시스템의 보완에 보고있습니다.
시스템이라는 것은 사회의 투명성과 정의와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이 근저에 깔려있는 곳에서의 개인의 노력의 차를 이야기함이 타당하지
출발선이 다른 곳에서 개인의 노력을 이야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보는 관점이죠
개인탓,자신탓이라는 전부 부정하는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지 않나요?
사회의 분위기에 적응되고 살아갑니다.
일례로 지금의 교육의 이상열기는 어디있겠습니까?
지금의 아이들이 70,80년대 아이들보다 교육을 덜 받습니까? 학원을 덜 다닙니까?
아닙니다. 더 많은 학원과 더 많은 공부를 합니다.
SKY를 위해서 거기에 들어가야지만 사회적 차별에서 벗어나 살 수 있으니까
출세하니까 성공하니까 돈 많이 버니까
즉, 과거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해도 사회적 분위기가 출세와 성공만을 향해 달리니 그들은 과거의 사람들보도다도 더 많은 압박감에 살아가는 겁니다.
하루하루가 지치고 힘듭니다.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조금 흘러갔지만
김제동의 사건을 보는 제 눈은 김제동 본의 문제로 치환해서 생각하기 시작하면 좀 더 크게 사회적 분위기로 보자라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심현섭이 나와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심현섭이 과거의 정권에서 탄압을 받았는데 지금와서 새정부들어와서도 빌빌대니 개인의 실력부족이네 라고 김제동도 다음진보정권에서 잘하면 된다. 그러지 못할 경우는 개인의 실력부족이다.
라는 말이 왜 그런 현상이 지금에 일어나야만 했는지에 대한 아무런 대안과 해결책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과거의 잘못-예를 들어 심현섭이 정말로 정치적탄압을 받았다면 그건 그 과거에 잘 못 된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바꾸어야 하는 노력이 있어야 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정말로 심현섭이 정치적탄압을 받았다면 그에대해서도 바르게 말하고 사과할 부분은 사과해야되지 않을까

과거에 내가 당했으니 너도 당해봐라라는 것, 억울하면 정권잡아 라는 것이 사회적 분위기의 상식이 되어버린다면 우리가 바라는 것은 정권에 따라 변하는 시스템의 열차에 기회주의적으로 무임승차를 하는 것이 처세술의 표본으로 받들여 질 것입니다.

이런 제 생각에 자신을 '진보주의자'라고 밝히신 그 분의 글이 굉장히 씁쓸하더군요.
마치 나도 진보 너도 보아하니 진보같은데 왜 나한테 이래 같은 느낌

다름을 인정하는 소통과 똘레랑스의 사회로의 점프는 언제나 가능할지
저도 많이 부족하죠.
그 글을보고 띵하고 댓글로 달렸으니

보수든 진보든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의 소신을 말하고 소통하는 사회는 언제쯤 올 수 있을까

'우리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하지만 불가능한 꿈을 꾸자'라고 말한 체 게바라의 말처럼
현실은 냉정한 눈으로 바라보돼 사고의 톱니바퀴의 정열은 멈추지 않는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볼테르의 말으 남깁니다.
“나는 당신이 말한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당신이 당신의 의견을 말할 권리를 위해서는 죽도록 싸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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